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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페라 라보엠을 읽다 -

기사입력 2020.02.16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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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페라’ 하면 ‘지루해’ 또는 ‘어려워’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없어’,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즐기기엔 너무 고상한 것이야’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오페라를 단 한 번도 제대로, 경험 해본 적이 없다. 왜 오페라엔 이런 편견들이 따라 다니는 것일까?
    그래서 대중들에게 조금 더 다가가기 쉬운 사실주의 오페라 들을 차례로 소개해 보려고 한다.
     
    사실주의 오페라는 베리즈모 라고 불리운다. Verismo는 아탈리아어 ‘Vero‘ 진실한, 사실적 이라는 뜻이다.  베리즈모 오페라는 보통 사람들의 삶과 친숙한 환경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는 점이 특징이다. 유럽의 19세기 후반은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난과 실의에 빠져있었다. 의식주를 해결하기 급급했던 사람들에게 부유한 귀족이나 신화와 같은 이야기는 공감하기 어려웠고, 서민들의 일상과 애환에 관심이 생겨나면서 나타난 것이 바로 베리즈모 오페라다.
     
    이전의 오페라에서 신화를 배경으로 하는 영웅이나 역사적 인물들을 다루었다면 베리즈모 오페라에서는 신적인 존재, 특별한 영웅이 아닌 보통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어 사랑, 분노, 비극, 질투 등의 현실적인 문제를 다룬다. 또한 내용의 전개가 빠르고 단순하여 연출적으로도 경제적 부담이 적고 오페라의 줄거리가 현실적이고 극적이어서 대중들에게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베리즈모 오페라의 흐름 위에 푸치니 (G.Puccini)가 등장하여 19세기 말부터 20세기에 걸쳐 라 보엠 (La Boheme), 토스카(Tosca), 나비 부인 (Madama Butterfly) 등의 걸작을 남겼다. 이번호에서는 겨울에 보고 싶은 오페라 푸치니의 (G.Puccini) 오페라 “라 보엠”을 소개 해보려 한다.
    푸치니의 라보엠 ‘La Boheme’은 베리즈모 오페라의 대표작이다.
    라보엠은 우리나라에서도 해마다 겨울 무렵 단골로 공연장에 올라가는데 보통 사람들의 삶과 친숙한 환경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는 점이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을까. 제목 라보엠 “La Bohem”에서 'La'는 관사이고 Bohem은 보헤미안 이라는 뜻이다. 그 당시 체코 보헤미아 지방에 자유로운 영혼으로 방랑생활을 즐기는 집시들을 뜻한다. 그러나 오페라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집시라는 표현 보다는 자유롭기를 바라는 예술가들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라보엠은 총 4막으로 구성된 이탈리아어 오페라이다. 푸치니 이전의 작곡가 벨리니나 도니제티의 멜리즈마가 많이 쓰인 오페라와는 다르게 비교적 단순한 멜로디로 되어 있고 성악가의 발성적인 소리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연극적인 요소, 극적인 요소 감정이 중요하다.
    1막 처음 오페라가 시작되는 곳은 가난한 예술가와 날품 파는 젊은이들이 모여 사는 1830년대 파리의 라탱(Latin) 지구의  다락방 이다. 요즘은 많은 오페라들이 현대적인 연출로 바꾸어 공연 올리기를 선호 하지만 라보엠의 다락방만큼은 예전의 클래식한 연출을 고수 하는 분위기 이다. 낡은 아파트의 꼭대기 층 다락방에서 시인 로돌포는 화가 마르첼로와 함께 추위에 떨며 농담을 나누다가, 자기가 쓴 드라마 원고를 난로에 넣고 불을 피운다. 이 부분에서 자신의 피와 땀으로 쓴 원고를 추위에 못 이겨 장작으로 넣고 때우는 현실은 1830년대 파리나 2020년을 사는 우리들이나 다른 점이 없는 것 같다. 이들의 친구인 철학자 콜리네가 들어오고, 뒤이어 음악가 쇼나르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먹을 것을 잔뜩 사들고 온다. 네 친구가 신나게 먹고 마시는 중에 집주인 베누아 영감이 밀린 월세를 받으러 온다. 네명의 친구들은 베누아를 추켜세워 바람피운 경험을 털어놓게 만든 뒤 ‘부도덕한 인간’이라며 쫓아내 버리고는, 다 함께 카페 ‘모뮈스 Momus’로 간다. 밀린 월세를 받으러 온 집주인 베누아는 극중에서 예술도 모르고 이해심도 없는 구두쇠의 이미지로 표현되는데, 이 네명의 젊은 친구들에 의해 밀린 월세를 받지 못하고 쫒겨날 때 관객석에서도 주인공들과 같이 희열을 느낄 수 있다면 오페라가 마냥 어렵다, 재미없다 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로돌포, 마르첼로, 콜리네, 쇼나르의 연기를 보고 있자면 그들이 성악가 인지 코미디언인지 모를 정도로 실남 나는 연기가 필요하다. 배꼽이 빠지게 웃긴 장면인데 나는 성악가입니다~ 하고 노래만 하는 연주자라면 이 상황을 실감나게 관객들에게 전달하기 어렵다. 관객들이 같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오페라의 재미를 느낄 수 있고, 오페라에 재미를 느껴야 다시 공연장을 찾아오는 것이기에 연주자들의 책임이 막중한 것 같다.
    친구들을 먼저 내보내고 잠시 혼자 방에 남아 원고를 마치려던 로돌포에게 이웃에 사는 미미라는 여인이 불을 빌리러 찾아온다. 성냥이 없어서 불을 빌리러 왔으니 그녀의 형편이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할 수 있다. 자기 방으로 돌아가려던 미미는 열쇠를 잃어버렸고, 바람 때문에 촛불까지 다시 꺼져버린다. 오페라의 꽃 이라고 할 수 있는 ‘아리아’를 테너 로돌포가 어둠 속에서 미미의 손을 잡으며 ‘그대의 찬 손’( Che gelida manina )을 노래한다. 이에 미미도 ‘내 이름은 미미’( Mi Chiamano Mimi )라는 아리아를 노래한다. 미미 라는 주인공은 의외로 생각이 많고 철저한 면이 있는 것 같다. 아리아 속의 대사를 잘 들어다 보면 Vivo sola soletta là in una bianca cameretta 작은 하얀방에서 혼자 산다고 말하는데, 첫 만남에 왜 굳이 혼자 산다고 말했을까, 이것을 짐작해 청순가련형에 정숙하고 얌전한 캐릭터만은 아니라는 것을 짐작 할 수 있다.
    2막은 모무스 카페 앞 광장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이기 때문에 광장에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어쩌면 오페라 4막중에서 가장 화려하기도 하고 연출자가 무대연출에 있어 가장 신경이 쓰이는 막 일 것 같다. 네 친구와 미미가 식사를 하고 있는데 바람둥이로 유명한 미녀 무제타가 알친도로라는 돈 많은 노인을 애인으로 거느리고 카페에 들어선다. 무제타의 옛 애인이었던 화가 마르첼로는 애써 그녀를 외면하려 하지만, 무제따는 마르첼로의 관심을 끌기위해 아리아 ‘내가 혼자 거리를 걸어가면’ ( Quando m’en vo’ )을 부른다. 대중들에게 성악가는 뚱뚱하고 덩치가 크다라는  선입견이 있는데, 요즘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다. 케릭터의 역할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무제따 같은 역활은 길을 걸어만 가도 수많은 남자들이 쳐다보는 외모와 끼를 표현해야 하는데 뚱뚱하고 덩치만 큰 성악가가 나와서 노래한다면 관객들을 매혹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요즘은 노래도 잘해야 하지만 연기력까지 갖춘 연주자들을 선호하는 분위기 이다. 시대적흐름이 오디오 시대에서 비디오 시대로 바뀌면서 연주자들도 자연스레 멀티 플레이어가 되어가는 중이다. 모무스 카페에서 마르첼로와 무제타는 서로에 대한 열정이 그대로임을 확인한다. 발이 아프다며 구두를 고쳐오라고 알친도로를 내보낸 뒤 무제타는 네 친구들의 계산서를 모두 알친도로 테이블에 떠넘기고는, 이들과 함께 카페를 떠난다.

    3막은 두 달 후 이른 새벽, 병색이 짙은 미미가 마르첼로를 만나러 온다. 미미는 로돌포의 질투와 변심으로 헤어질 수밖에 없다며 하소연한다. 마르첼로에게 로돌포는 미미가 바람기가 있어 헤어져야겠다고 말하지만, 마르첼로는 ‘맘에 없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그러자 로돌포는 진실을 밝힌다. 사실은 자기와 함께 살아서 미미의 폐결핵이 더욱 악화되고 있는데, 자신은 난방비도 벌지 못하고 있어 너무나 괴롭다는 얘기였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미미를 살릴 수 없다는 걸 인정한다는 것이 어려워 그동안 미미에게 그토록 ‘찌질한‘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점이 오히려 관객의 공감을 사지 않았을까, 사람은 누구나 약한 모습이 있고 또 실제로 약하니까 강한 척 해보는 게 우리들의 모습이지 않을까
    오페라에서 로돌포는 꿈을 먹고 사는 시인이고, 현실보다 막연한 꿈을 쫓아가는 케릭터 이다. 이런 역할에 미미라는 사랑하는 여인을 만났고 그 여인이 병들어 가는데 자신의 형편으로는 고쳐줄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힌 것이다. 사랑하는 미미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이 못나고 한심하고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마지막 4막은 다시 처음처럼 로돌포의 다락방 이다. 미미와 헤어진 로돌포는 글을 쓰고 있고, 역시 무제타와 헤어진 마르첼로는 그림을 그린다. 이때 무제타가 달려 들어와 병이 위중해진 미미를 데려왔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미미를 만나 운명적인 사랑의 빠진 곳도 이곳 다락방이였는데 미미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소도 다락방이다. 아마도 미미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삶이 다 되어가는 걸 느끼고,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서 죽고싶어 연인이 있는 곳, 자신의 마지막 자리로 다락방을 찾아온 것이다. 미미가 숨을 거두고 로돌포가 미미를 부르짖으며 막이 내린다. 막이 내려오고도 얼마간 관객석에서 박수소리가 나지 않은 공연도 몇 번 보았다. 그만큼 극에 빠진 관객들이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던 것이다.
    푸치니는 <라 보엠>을 통해 연인들의 사랑에 초점을 두어 현실과 이상을 잘 보여주었다.
    미미와 로돌포에게서는 이상적인 사랑과 안타까운 현실을, 무제타와 마르첼로에게서는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현실적인 사랑을 표현했다.
    끝으로 서울에서 뿐만 아니라 지역에서도 이런 수준 높은 공연을 자주 접함으로써 대중들에게 어려운 오페라가 아닌 재미있는 오페라로 느껴지는 날이 오길 희망해 본다.
     

     

    -차보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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